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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남의 서프라이즈

20대 초반 복학 후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운 좋게 동아리에 들어갔고, 그 때 유난히 날 챙겨주던 형이 있었다. 작지 않은 키에 그렇게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지만, 좋은 목소리와 친절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형도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나를 보면 환하게 웃어주었고 항상 먼저 밥을 같이 먹자고 했다. 서로 긴가민가했지만, 사회 분위기상 우리의 마음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았기에 그렇게 서로의 간을 보는 시간은 지속되었고, 언제부턴가 우리는 썸을 타기 시작했다. 몇번이나 그가 그의 속마음을 말할 순간이 있었으나,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 탓인지 쉽게 드러내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알고 있었다. 언젠가 그가 나에게 깜짝 고백을 할 것이란 걸.

 

그렇게 2년 동안 썸을 타다가, 형은 졸업을 하고 취업 준비에 뛰어들었다.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힘들어하는 형을 위해 밥을 사주고 가끔 선물도 주었다. 그럴때마다 형은 고마워하며 웃어주었다. 그때 그 미소를 볼 때마다 나는 확신했다. 취업을 성공하고 나면 그가 나에게 깜짝 고백을 할 것이라는 걸.

 

그렇게 형은 몇개월 뒤 꽤 빠르게 취업에 성공했고, 형은 나 덕분에 힘내서 준비할 수 있었다고 밥을 사주었다. 그러나, 그는 식사시간 동안, 그리고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깜짝 고백을 하지 않았다. 혹시 밤을 지새면서 어떻게 고백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을까봐, 다음날 약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러나, 결국 어떠한 형태의 고백도 오지 않았다. 잠깐 서운했지만 곧 깨달았다. 형은 이제 막 취업을 했기 때문에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참, 바보같긴. 형은 그 자체로 멋있는데, 얼마나 더 멋진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 고백을 하려고 하는건지..

 

그렇게 몇개월 동안 연락 없이 지내다가, 동아리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 간만에 연락이 닿아 술자리를 하게 되었다. 옛날 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대화하고 있다가, 우연히 형의 이야기가 나왔다. 썸의 기간이 길어져서 그런가? 그의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나온다. 나는 즐겁게 그와 있었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친구가 뜻밖의 말을 하였다.

 

"아, 근데 그 형 여자친구 생겼더라?"

 

갑자기 어안이 벙벙해졌다.

친구 말로는 인스타그램에 여자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게시했다고 한다. 굳이 내가 하지 않고 있던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린 것이다. 나는 잠깐 당황스러웠으나, 곧이어 깨달았다.

 

아, 이 모든 것이 다 계획된 것이었구나.

 

형은 엄청난 서프라이즈를 기획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애초에 이 동아리 친구와의 만남 조차 형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친구를 통해 자연스럽게 "형이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거짓 정보를 나에게 흘려 내가 속상해하는 틈을 타 깜짝 고백을 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내가 이렇게 눈치가 좋아.. 하지만, 이런 계획을 하는 그 남자. 너무 귀엽지만 하찮다. 어떻게 그렇게 티가 나는 거짓말을 하는 거지? 형이 나를 좋아하는걸 뻔히 아는데. 여자친구인 척 하는 사람과 사진까지 찍고 그걸 또 게시까지 하는 정성까지 들여가며.. 나는 형의 서프라이즈의 성공을 위해 넘어가줬다. 서프라이즈를 성공한 뒤 기뻐하는 형의 표정을 보기 위해서.

 

나한테 얘기도 없이 인스타를 시작했다는 사실은 좀 괘씸해서 그 날 집에가서 인스타 계정을 만들고 팔로우하고, 그 게시물에 '좋아요'까지 해줬다. 팔로우한뒤 형한테 "인스타 시작했네?" 라는 디엠이 왔는데, 글자에서도 당황스러움이 묻어나왔다. 정말 귀엽다 귀여워.

 

그는 나와 맞팔을 하고 나서 부터 그 가짜 여자친구분과  데이트하는 모습을 인스타 스토리에 꼬박꼬박 올렸다. 진짜 어떤 서프라이즈를 준비를 하기에 이런 노력까지 하는거지? 아무리 가짜지만 형은 너무 하기 싫었겠다.. 마음이 없는 상대와 하는 데이트는 얼마나 끔찍할까? 아마 나와 하는 데이트를 상상하면서 꾹 참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몇년동안 형의 큰 그림 그리는 모습을 가만히 감상하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형에게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같이 밥을 먹자고 한다. 옳커니. 이제 진짜구나. 나는 그날 약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승낙했다. 내가 거절하면, 형이 계획했던 그림이 다 무너져버릴테니. 이 정도 희생? 아무렇지도 않다.

 

약속 날, 근사한 식당은 아니었지만 꽤 고가의 식당에서 형과 오랜만에 만났다. 형의 모습은 인스타로 충분히 봐왔지만, 형의 실물은 훨씬 멋있었다. 형은 대학 다닐때의 그때처럼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어주었다. 나는 웃을 때 형의 눈동자가 사라지는게 너무 좋다. 내가 저 웃음을 얼마나 사랑했고, 또 얼마나 오랫동안 보고 싶었는지. 눈물이 왈칵 나올 뻔했지만, 나중에 마주칠 서프라이즈를 위해 눈물을 애써 삼켰다. 그래, 오늘은 내가 주인공인걸.

 

나는 형과 즐거운 식사를 하였고, 식사가 끝날때즈음 형이 나에게 할말이 있다고 하였다. 그래, 난 준비됐어.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렸는지, 벌써부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형의 나에게 건네준 것은 뜻밖의 것이었다.

 

'청첩장'

 

청첩장? 아직 결혼까진 준비가 안되어있는데.. 너무 급한거 아닌가? 나는 천천히 하는게 좋은데.. 그래도 형이 원한다면 다 괜찮다. 조금 빠르면 어때, 어찌보면 우리가 썸을 탄 시기가 10년이 다돼가는데, 이정도는 뭐 사실혼이나 다름 없다. 근데 뒤에 나온 말이 충격적이었다.

 

"너 내가 (가짜?)여자친구 있는 거 알지? 나 걔랑 이번에 결혼하기로 했어."

 

그 뒤에 무슨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한테 고마워서? 직접 보고싶어서? 직접 말하고 싶어서? 사랑해서?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죽고 싶어서? 죽이고 싶어? 죽고 싶어? 죽어? 

 

집에가서 몇시간이나 울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토를 했던 것도 같고, 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가늠도 안됐다.

 

그래도 배는 고파서 억지로 식은 밥을 퍼먹었다.

허기가 사라지니, 땅바닥에 떨어진 청첩장을 발견했다.

 

나는 울분을 토하며 청첩장을 찢으려다, 곧이어 깨달았다.

 

이것도 깜짝 고백 이벤트 과정 중 하나구나.

 

나에게 (가짜) 여자친구와 (가짜) 결혼식을 한다는 말을 해서 (가짜) 청첩장을 나에게 준거구나. 그리고 나는 형의 (가짜) 결혼식에 가서 형과 (가짜) 아내분에게 축하한다고 말하겠지. 그리고, (가짜) 결혼식을 하는 줄 알았으나, 사실은 그곳은 나에게 프로포즈를 하기 위한 곳. 그렇게 형은 나에게 그동안 기다리게 해서 미안했다고 울면서 나에게 깜짝 고백을 하겠지. 괜찮아. 힘들었지만,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면 됐어. 결국엔 형과 함께 하는 엔딩인거잖아. 앞으로는 더 행복할테니까 괜찮아.

 

나는 괜시리 웃음이 나왔다. 행복해.. 내 미래는 행복할거야. 그 옆에는 형이 함께하겠지. 나는 (가짜) 청첩장을 집어 들고 작은 상자에 보관했다. 이것 또한 나중에는 행복한 추억이 될테니까. 서로 나이가 들어 함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을 때, 이 (가짜) 청첩장을 보면서 영감이 장난이 짓궂었다고 하면서 과거를 추억하며 현재를 행복해하며 서로 웃겠지. 귀엽다. 주름진 그의 모습조차 상상만 해도 귀엽고 멋있다.

 

나는 (가짜) 결혼식까지 시간이 꽤 많이 남았지만 그때 입을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모습으로 갈 거야. 왜냐하면, 나도 형에 걸맞는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 만약 그날 서프라이즈를 하지 않더라도 괜찮다. 어차피 그것도 형의 계획 중 하나일 뿐일테니. 이제는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괜찮아, 어쨌든 결과는 해피엔딩일테니까. 과정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것의 종점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서프라이즈라면, 난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댓글
13
  • 2023.01.24
    본인이 삭제한 댓글이에요
  • 2023.01.24
    본인이 삭제한 댓글이에요
  • 작성자
    → 17668
    2023.01.24

    소설 맞아용!

  • 2023.01.24
    본인이 삭제한 댓글이에요
  • 2023.01.24

    라스폰트리에 영화 줄거리같아!

  • 작성자
    → 84643
    2023.01.24

    칭찬이야?

  • → 27803
    2023.01.24

    싸이코같다는거야!

  • 작성자
    → 84643
    2023.01.24

    😭😭😭

  • 2023.01.24

    뭔가 씹덕스토리게임에 나올 법한 얀데레 스토리 같애 ㅋㅋ

  • 2023.01.24

    읽고 나년 감동해서 울엇오...

  • 2023.01.25

    길어서 못읽었어!

  • 2023.01.28

    진짜정신병자같다

  • 작성자
    → 63262
    2023.0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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